사상인 치료법

사상의학의 치료법은 곧 약물을 통한 치료법입니다. 사실상 이제마의 머릿속에 침은 없었습니다. 침을 놓았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어요. 다만 침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 『동의수세보원』에 있습니다. 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문장이지요.

한번은 소음인이 중기병中氣病으로 혀가 말려 들어가고 말을 못하는데 어떤 의사가 합곡혈에 침을 놓으니 신효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다른 모든 병에도 약이 속효를 못 낼 때 침이 속효를 내는 경우가 있다.

침혈에도 사상인이 응용할 수 있는 혈이 있어 승강완속升降緩束의 오묘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니 훗날 신중하고 사람 살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이루어주기를 삼가 부탁한다.

嘗見少陰人中氣病舌卷不語, 有醫針合谷穴, 而其效如神. 其他諸病之藥不能速效者, 針能速效者有之. 盖針穴亦有太少陰陽四象人應用之穴, 而必有升降緩束之妙繫. 是不可不察, 敬俟後之謹厚而好活人者.『東醫壽世保元』「少陰人泛論」

이것도 이제마가 시술한 건 아니잖아요? 주변에서 놓는 거 보고 평만 단 것입니다. 경락은 또다시 거대한 산맥이거든요. 사상인의 약학체계와 아울러 사상인의 침학체계를 만든다는 건 한 개인이 달성하기에 너무 지난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마는 사상인 침학을 기대했어요.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숙제를 미래에 맡긴 것입니다. 권도원의 체질침은 그 모색 중 하나입니다.

권도원은 1965년 사상의학적 침치료법을 표방하며 처음으로 “체질침”의 체계를 발표하였다. 현재 체질침은 사상체질침에서 8체질침으로 거듭나며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면서 인류의 질병 치료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마는 한의학의 치료법으로 오직 약을 말했습니다. 이제마의 머리에서 한의학적 치료란 곧 투약을 의미했어요. 그런데 『동의수세보원』의 약리론은 전통의 약리론과 매우 다릅니다. 저는 이것을 장리에 따른 약리론, 병증에 따른 약리론으로 나누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장리臟理에 따른 약리론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약물을 사상인 중 하나에 소속시킨다는 뜻입니다. 이을호는 체질약물 혼용불가의 원리라 말하기도 했어요. 사상의학의 기본 중 기본이지요. 이제마는 정말 악착같이 약물을 사상인으로 나누어보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모과는 태양인, 구기자는 소양인, 녹용은 태음인, 인삼은 소음인에만 사용할 수 있는 약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인 본초 분류는 철저히 임상의 검증을 통해 확정되었다는 사실에 힘이 있습니다. 이제마는 지독한 도식주의자이기도 했지만 치열한 실증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사상인 본초 분류는 임상의 확인을 거쳐 매우 엄격히 이루어지고 있어요.

둘째, 병증에 따른 약리론입니다. 감초나 대추, 인삼이나 홍삼 등이 소음인 약이라고 결코 모든 소음인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는 체질의학에 대한 대표적인 왜곡 사례 중 하나입니다. 소음인이라고 무조건 인삼이 좋진 않고 소양인이라고 무조건 산수유가 도움되진 않습니다. 같은 소음인이라도 몸 상태는 천차만별이에요. 같은 소양인이라도 건강의 수준은 전혀 다릅니다. 투약이란 각 체질의 약 중에서 환자의 증상에 가장 부합하는 약을 선별해서 처방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체질만이 아니라 체질과 함께 병증을 꼭 살펴야 합니다.

이제마는 모든 약재를 태소음양인 약 중 하나로 분류해 놓았다. 이러한 약재 분류는 임상의 검증을 거쳐 엄격히 이루어졌다는데 사상의학의 힘이 있다. 녹용(위)은 처음 소음인 약으로 판단했으나 경험의 확충으로 태음인 약으로 최종 확정하였다. 또 한 때는 감초(아래)를 생으로 쓰면 태양인 약이고 구워서 쓰면 소음인 약이라 보기도 했다. 현재 감초는 소음인에게만 활용한다.

사상의학은 독특한 약리론에 근거해서 질병을 치료하는 치료의학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저 음식 가리는 의학이 아니에요. 현재 사상의학은 수천 년 축적된 약물학의 저력을 흡수하여 만성병과 난치병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