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략사

『동의수세보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 책 『이제마, 인간을 말하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동의수세보원』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동의수세보원』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제마가 직접 쓴 저술후기가 있습니다.  

이 글은 1893년(계사년) 7월 13일 시작됐다. 밤낮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잠시도 쉬지 않았다. 다음 해 1894년(갑오년) 4월 13일 완성하였다. 소음, 소양인론은 매우 상세히 갖춰놓았으나 태음, 태양인론은 겨우 간략하게만 이루어놓았다. 경험이 충분하지 못한데 이미 기력이 쇠잔했기 때문이다. 『예기』에 ‘책을 열어 통달하지 못하거든 생각하라’고 했는데, 태음, 태양인도 생각해서 깨닫는다면 간략하다 한들 무슨 손해가 되겠는가!

인구가 5~6만 정도 되는 도시에 옹기장이가 한 명뿐이라면 그릇이 부족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구가 5~6백 정도의 시골이라도 의사가 한 명뿐이라면 사람을 살리기엔 부족할 것이다. 반드시 의학을 널리 밝혀 집집마다 치료법을 알고 사람마다 질병을 알아야 진정 세상을 장수케 하고 근원을 보존할 수 있다.

갑오년 4월 13일 함흥의 이제마가 한남의 산중에서 글을 마치다.

此書自癸巳七月十三日始作. 晝思夜度, 無頃刻休息, 至于翌年甲午四月十三日. 少陰少陽人論則略得詳備. 太陰太陽人論則僅成簡約. 盖經驗未遍, 而精力已憊故也. 『記』曰, ‘開而不達則思.’ 若太陰太陽人思而得之, 則亦何損乎簡約哉! 萬室之邑一人陶, 則器不足也. 百家之村一人醫, 則活人不足也. 必廣明醫學, 家家知醫, 人人知病, 然後可以壽世保元. 光緖甲午四月十三日, 咸興李濟馬畢書于漢南山中.

이 글은 이제마가 「사상인변증론」까지 완성한 후 가장 마지막에 쓴 글입니다. 먼저 집필 시기와 장소를 기록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서에 대해 간략한 자평과 함께 수세보원이라는 단어에 담긴 뜻을 적어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세보원은 일반명사의 용법입니다. 세상을 장수케 하고 근원을 보존한다는 뜻이죠. 수세壽世가 사회적 건강이라면 보원保元은 개인적 건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마는 사상의학을 통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는 모습을 꿈꿨어요. 그러기 위해선 누구나 질병을 알고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요즘 말로 각자가 건강의 주권을 회복하는 민중의료를 꿈꾼 것입니다.

집필 장소로 언급한 한남산중은 지금의 서울 남산입니다. 여기에 이능화의 아버지인 이원긍李源兢의 집이 있었어요. 이제마는 이곳에 거처를 얻어 집필했습니다. 이원긍의 집이 어디쯤이었는지 정확히 알긴 어렵지만 대략 현재 동국대가 있는 필동 인근이었으리라 추정됩니다. 서울에서는 이곳이 이제마의 거취를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입니다.

1750년경 제작된 관찬官撰 지도집 『해동지도』에 수록된 함흥부. 성천강과 호련천 사이로 보이는 함흥읍성을 반룡산이 품고 있다. 반룡산 자락 깊은 곳에 문회서원이 있고 그 아래 지역이 현재의 회상동에 해당하는 둔지屯地이다. 이제마는 문회서원 인근의 주막에서 태어났다. 문회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졌으며 함흥읍성은 1910년 철거되었다. 이제마의 본가인 사촌沙村은 남문 바로 밖에 있었다.

그런데 동무는 1895년 2월 갑자기 함흥으로 하향하게 됩니다. 셋째 어머니의 노환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죠. 그리고 계속 함흥에 머무릅니다. 그러면서 돌아가시는 1900년까지 『동의수세보원』을 고쳐 써요.

동무는 첫 작업의 한계를 명료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워한 것은 경험의 부족이었죠. ‘경험미편經驗未遍’, ‘경험이 충분치 못하다’라고 했어요. 새로운 의학이다 보니 합리적 측면보다는 경험적 측면이 더욱 문제가 되었던 겁니다.

동무는 그 한계를 또다시 넘어서려고 합니다. 미흡한 경험치를 최대한 보완하고 책의 구성 자체를 일부 변경했어요. 아마 이제마에게 더 많은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짰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제마는 1900년 11월 12일 정오 무렵에 제자인 김영관의 집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나이 64세였습니다.

함흥 북문(좌상)과 남문(우하). 북문 밖으로 도도히 흐르는 성천강을 볼 수 있다. 성천강을 건너 함흥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세교(우상)를 건너야 했다. 남문 밖 길거리 풍경이 이채롭다. 동무도 사촌을 가면서 무수히 들락거렸을 것이다.(좌하) 이제마는 만세교가 내려다보이는 천서면 운동에 잠들어 있다.